원제 :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저자 :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장르 : 역사, 인문학, 교양도서

들어가며: 인류의 역사라는 거대한 이야기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두꺼운 책 사이로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라는 장 제목이 보였어요. 지구를 지배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우리를 두고 중요치 않다니, 그 반전에 순식간에 꽂혔죠. 한 장을 펼친 뒤에는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유발 하라리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이 책은 2011년 원서 출간 이후 전 세계 65여 개국에서 2,300만 부 이상 팔린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됐죠. 한국에서는 2023년 1월 기준 115만 부가 팔리며 200쇄를 찍었어요. 이번에 만난 국내판은 출간 10주년을 맞아 인공지능(GPT-3)이 작성한 서문을 포함한 2023년 기념판이에요. 인류의 탄생부터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이 다가오는 미래까지, 한 권에 담긴 인류 수십만 년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인류는 왜 유일하게 살아남았을까


사실 호모 사피엔스는 처음부터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었어요. 수십만 년 전 지구에는 우리와 비슷한 인류가 여럿 살고 있었고, 그중 호모 사피엔스는 딱히 두드러지지 않는 존재였다고 해요. 그러다 약 7만 년 전쯤 인지혁명이라는 변화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하라리의 설명에 따르면 결정적인 차이는 언어의 힘이었어요. 우리는 눈앞에 없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허구를 여럿이 함께 믿을 수 있게 됐죠. 허구 하나를 함께 믿는 순간, 서로의 얼굴도 모르는 수백 명이 하나의 무리가 되어 거대한 사냥감을 에워쌀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신, 국가, 회사, 화폐. 모두 실체가 없는 허구지만, 수백만 명이 같은 허구를 믿는 순간 거대한 협력이 시작됩니다. 하라리는 이 '허구를 이야기하는 능력'을 호모 사피엔스 성공의 가장 큰 비결로 꼽아요.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나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주장은 농업혁명에 대한 평가였어요. 우리는 농사가 인류를 배부르고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배웠지만, 하라리는 반대로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부릅니다. 수렵채집 생활이 오히려 노동량은 적고 영양은 풍부했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책 2부 '역사상 최대의 사기' 장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밀밭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하루 종일 이삭을 거두던 농부의 하루를 떠올려보세요. 흉년 걱정이 사라질 거라 믿었지만, 더 많은 아이들이 배를 불리러 왔고 돌아갈 옛 생활의 다리는 이미 불타버렸어요. 책은 결국 밀에게 길들여진 사피엔스라는 역설까지 던져요.

상상의 질서, 피라미드와 법전이 만든 세상


서로를 모르는 수천 명이 어떻게 하나의 목표로 움직일 수 있을까요. 하라리의 답은 상상의 질서예요. 국가, 법, 계급, 종교 같은 것들은 사실 우리가 함께 믿기로 한 이야기일 뿐인데, 그 이야기를 객관적 실재라고 믿을 때 사람들은 낯선 이와도 협력하게 돼요.

사람이 평등하지 않은 것은 함무라비가 그렇다고 해서가 아니라 엔릴과 마르두크가 그렇게 명했기 때문이다.


책 2부 '피라미드 건설하기' 장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왕이라는 이야기를 함께 믿는 순간,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피라미드 건설 현장에서 한 방향으로 돌을 나릅니다. 하라리는 이 상상의 힘으로 인류가 수백만 명 단위의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해요.

돈의 향기, 낯선 사람을 신뢰하게 만든 것


인류의 통합을 이끈 가장 위대한 상상의 질서는 아마 일 거예요. 서로 다른 언어와 신을 가진 사람들도 돈 앞에서는 함께 신뢰를 주고받으니까요. 어느 시장 골목에서 두 상인이 서로 다른 땅의 화폐를 주고받으며 거래를 마치는 그 순간, 낯선 사람 사이에 신뢰가 생깁니다.

제국과 종교도 마찬가지였어요. 서로 다른 부족을 하나의 '우리'로 묶어주는 이야기들이 수백 년에 걸쳐 지구 곳곳의 사람들을 연결했죠. 하라리는 이 과정을 인류의 통합이라고 부르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바로 그 통합의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무지의 발견에서 시작된 과학혁명


과학혁명의 진짜 출발점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무지의 발견이었어요. 인류는 수천 년간 세상의 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1500년경부터 '우리는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죠. 책 4부 '무지의 발견' 장에서 하라리는 왜 과학혁명이 중국이나 인도가 아니라 하필 서유럽에서 시작했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모른다. 학자들은 열몇 가지 이론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그럴싸한 이론은 없다.'

밤하늘을 향해 망원경을 들이대고 관측 노트를 채워가던 학자의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겸손함에서 출발한 탐구가 결국 인류의 세계관을 통째로 바꿔놓았어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미지가 탐구의 대상이 되고 지식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과학과 제국의 결혼, 자본주의의 시대


과학은 혼자서는 멀리 나아가지 못했어요. 그것을 실어 나른 건 제국의 배였죠. 학자와 선장이 갑판 위에 지도와 항해 장비를 펼쳐놓고 항로를 짚던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새로운 지식은 제국의 팽창을, 제국의 부는 다시 과학의 연구비를 뒷받침했어요. 하라리는 이를 과학과 제국의 결혼이라고 부릅니다.

그 뒤에는 자본주의라는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이익을 다시 투자하면 모두가 더 풍요로워진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미래로 밀어냈죠. 성장을 당연시하는 이 교리 역시, 잘 들여다보면 하나의 상상의 질서에 다름없어요.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이었다


하라리는 산업혁명을 에너지 전환의 혁명으로 읽어요. 책 4부 '산업의 바퀴' 장에서 이렇게 말하죠.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산업혁명은 되풀이해서 보여주었다.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뿐이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철길을 달리는 증기기관차를 떠올려보세요. 몇십 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며 인류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끝없이 늘어났고, 그 힘으로 공장과 도시와 전 세계가 이어졌어요. 부족한 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그것을 찾아내 전환하는 지식이라는 하라리의 지적이 오래 남았어요.

더 풍요로워진 세상,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까


그런데 하라리는 마지막에 가장 어려운 질문을 던져요. 기술과 풍요가 정말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아침에 가득 찬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은 수렵채집 시절의 어느 날보다 확실히 넉넉하지만, 기분과 욕망도 그만큼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풍요와 행복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책은 더 멀리 내다봅니다. 유전공학과 인공지능, 나노기술로 천국을 건설할 수도, 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 출간 10주년 기념판의 서문은 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는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해요. 현명한 선택을 할지의 여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고요.

마치며: 인간 이해라는 새로운 이야기


솔직히 이 책은 가볍게 읽히는 책은 아니에요. 4부 20장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에, 농업혁명 사기론 같은 주장은 동의 여부가 갈릴 수 있죠. 특정 통계나 사례에 대한 이견을 가진 독자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한 번쯤 자신의 세계관을 통째로 흔들어볼 만한 경험인 것만은 분명해요.

인류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했던 분, 평소 역사책이 어렵게 느껴졌던 분, 왜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믿고 함께 살아가는지 궁금했던 분께 특히 추천드려요. 이 책을 덮고 나면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인간 이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해요. 우리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앞으로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모든 분에게 이 책이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거예요.

9.3 / 10점 ★★★★★★★★★
한 줄 총평: 인류 수십만 년의 역사를 하나의 통찰로 꿰뚫어, 세상을 읽는 눈을 바꿔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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