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透明な螺旋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옮긴이 김선영)
장르 : 소설, 미스터리, 추리

들어가며: 왜 모두가 유카와 마나부의 비밀에 꽂혔을까요?


"자네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갈릴레오 시리즈를 오래 따라온 독자라면, 이 말을 읽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드디어 유카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뜻이니까요. 이번 작품 《투명한 나선》은 1996년 일본에서 처음 연재되어 30주년을 맞은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이고,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주인공 유카와 마나부의 비밀이 처음 밝혀지는 전환점으로 불립니다. "유카와의 비밀이 처음 밝혀진다"는 카피 하나에 반신반의하며 책을 집어 들었어요. 그런데 첫 페이지부터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어쩌면 그 '달라진 분위기'야말로 이 책을 다른 갈릴레오 작품과 구별 짓는 지점일지도 몰라요.

"어디를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열차 안이었다." 도쿄행 야간 열차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는, 사건을 풀어내는 천재의 모습이 아니라 한 남자의 어두운 과거로 향하는 여정을 예고합니다. 재미있는 미스터리라기보다 어딘가 서늘하고 무거운 결이 먼저 다가왔어요. 유카와 마나부라는 인간을 마침내 발견하게 되는 한 권, 그 기대를 안고 첫 장을 넘겼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영화·드라마로 영상화된 작품이 많은 작가인데요. 갈릴레오 시리즈도 《용의자 X의 헌신》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된 작품이 많습니다. 그 열 번째 작품인 이번 책이 특별한 이유는, 화제의 반전이나 과학적 추리가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이 처음으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유카와는 누군가에게 다가가기보다 수수께끼처럼 뒤편에 서 있는 인물이었으니까요. 책에는 본편 외에 특별 단편 《겹치다》와 옮긴이의 글이 함께 실려 있어, 시리즈의 여운을 더 오래 붙잡아 둡니다.

등에 난 총알구멍, 왜 '자살'이 아니라고 단정했을까요?


사건의 시작은 무척 냉정합니다. "시체를 자세히 관찰한 결과, 중대한 사실이 나왔다. 등에 총알구멍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사법 해부 결과 몸속에서 총탄을 발견했다." 등 뒤에 총탄을 맞았다는 사실 하나로, 자살 가능성은 낮아지고 누군가의 손에 총살당한 사건이 됩니다. 단 한 줄이 사건 전체의 방향을 뒤바꾸는 순간, 갈릴레오 시리즈 특유의 차가운 긴장감이 깔려요. 사실 이 시리즈는 사건의 첫 장면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깔아두는 솜씨가 늘 뛰어난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불안감의 대상이 사건이 아니라 인물이라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이 장면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추리소설의 재미는 반전 자체보다, 그 반전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밟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번 작품은 물리학자의 추리보다 사건의 이면을 파고드는 수사가 이야기의 축이 되어, 스릴러에 가까운 리듬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듭니다. 등 뒤의 총탄 하나가 던진 질문이, 끝까지 따라붙었어요. 시리즈 이름 '갈릴레오'는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를 가리키는 별명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형사 구사나기의 발끝이 더 오래 머무는 이야기입니다.

사라진 소노카, 정말 애인에게서 도망친 걸까요?


그리고 사건은 사라진 인물, 소노카를 향합니다. 수사 과정에서 오카타니 마키가 건넨 직감이 특히 인상 깊었어요. "소노카는 달아난 게 아닐까요?" "달아나요? 누구로부터?" "그러니까, 애인한테서요." 그녀는 이어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소노카, 아마 애인에게 맞고 있었을 거예요. 교제 폭력 말이에요." 과학적 추리로 유명한 시리즈에서, 사람의 관계를 읽어내는 대화가 중심을 잡아가니까 신선했습니다. 범죄의 원인을 과학적으로만 해석하지 않는 시점이, 사람을 다루는 미스터리다운 지점이라고 느껴졌어요.

갈릴레오 시리즈가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가 또렷이 느껴지는 대목이에요. 물리학자의 냉철한 눈이 사건의 실체를 쫓는다면, 주변 인물들의 다정하고도 날카로운 관찰이 그 빈틈을 채워나갑니다. 소노카를 둘러싼 '왜'라는 질문들은, 단순한 실종 추적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남긴 상처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가 되어갑니다. 특히 이 작품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든 주변 사람들의 시선까지 골고루 보여줘서, 단순한 범인 찾기 이상의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림책 한 페이지가 왜 그렇게 놀라웠을까요?


수사가 진척될수록,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결정적 단서가 됩니다. 구사나기가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는 장면이 특히 그랬어요. "누가 봐도 시큰둥해 보이는 옆얼굴이었다. 그런데 페이지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화들짝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사히 씨가 이 참고 문헌을 읽으신 겁니까?' 목소리에 긴장감이 묻어났다." 책 속의 그림책 한 권이,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었습니다.

이런 구성이 이 시리즈만의 매력입니다. 화려한 장치보다, 한 권의 그림책과 한 권의 참고 문헌 같은 평범한 사물이 사건의 축을 돌리는 방식을 보여주니까요. 덕분에 읽는 내내 '놓친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이어집니다. 페이지에 남은 작은 흔적 하나를 발견하는 순간,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의 정수가 다시 떠오릅니다. 나중에 그 그림책 속 문장을 다시 곱씹어 보니, 첫 읽기에서 지나쳤던 한 페이지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더라고요. 책을 덮은 뒤에도 그 단서들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협조해 줄게', 그 말이 왜 서늘하게 느껴졌을까요?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나옵니다. 구사나기가 물리학자의 협조를 끌어내려 할 때였어요. "어떤 식으로 협조한다는 거야?" "그건 나중에 알려 줄게. 만나서 반가웠어. 조심히 돌아가." 그렇게 말하고 유카와는 훌쩍 등을 돌렸습니다.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멈추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어요. 등을 돌리는 그 순간의 서늘한 여운이, 장면 하나로 책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 놓습니다.

수많은 사건을 함께 풀어온 형사와 물리학자 사이에서, 처음으로 '협조'라는 말이 오갔는데도 왜 이렇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을까요. 그 순간 깨달았어요. 유카와가 협조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사건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과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리즈를 오래 읽어온 독자라면 이 장면에서 단번에 전율이 오를 겁니다. 열 번의 작품을 거치며 늘 한 걸음 물러서 있던 인물이, 마침내 자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 느낌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변화이자 매력입니다.

점장의 기억, 사진 한 장이 왜 결정적 단서가 됐을까요?


목격자의 기억이 사건을 움직이는 순간도 짜릿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확인한 아오야마 점장은, 지난번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였어요. "이 사람이에요. 틀림없어요. 그날은 이렇게까지 꾸미진 않으셨지만, 나이에 비해서는 세련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눈을 빛내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그 모습이, 수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 책은 결정적인 증거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과 진술이 사건을 끌고 나가는 휴먼 미스터리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과학적 분석보다 먼저 사람의 기억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이, 현실의 수사처럼 입체적으로 다가와요. 점장의 짧은 증언 하나가 얼마나 큰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증언은 언제나 조각나 있고, 그 조각을 맞추는 사람에 따라 사건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죠. 불완전한 기억의 실을 따라 진실에 다가가는 맛이, 이 책의 또 다른 쏠쏠함입니다.

암막 커튼 뒤 응접실, 왜 그렇게 텅 비어 있었을까요?


책 전체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장면은, 실은 폭력이 아니라 비어 있던 방 하나였습니다. "아직 한낮이지만 암막 커튼을 달아 놓은 것 같았다. 응접세트가 있는 공간이 보였다. 안쪽에는 식탁도 있다. 구사나기는 재빨리 훑어보았다. 사람 흔적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화면으로 보이는 범위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낮인데도 빛을 가린 방, 그리고 그 안에 남아 있는 가구들.

사람의 흔적이 하나도 없는 공간이 이토록 불안할 수 있다는 걸, 이 장면에서 처음 느꼈어요. 어딘가에서 누군가 살았을 것 같은 응접세트와 식탁이, 오히려 그곳에 없는 사람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듭니다. 영화의 한 컷 같은 이 정경은, 다음 장을 넘기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게 했습니다. 무엇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을 때의 긴장감이, 이 책의 숨은 매력입니다. 좁은 공간 하나를 이렇게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쉽지 않은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공간의 쓸쓸한 숨소리까지 들려줍니다.

"약속해. 자네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말도." 그 약속은 뭘 감추고 있었을까요?


두 사람의 대화가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유카와가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유카와, 자네……." 뭘 감추고 있는 거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둔 구사나기는, 대신 고개를 들라고 합니다. "아까 한 말, 거짓말은 아니지? 수사를 방해하는 건 아니라는 말." 유카와는 이렇게 답합니다.

약속해. 자네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말도.


오랜 친구의 눈을 바라보며 건네는 이 한마디는, 사건의 진실보다 유카와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예감하게 합니다. 물리학자의 배반하지 않았다는 약속이,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어요. 의심과 신뢰가 한 문장 안에서 교차하는 순간,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구사나기와 유카와의 관계가 오랜 세월 얼마나 단단했는지를 밝혀줍니다. 의심하면서도 믿고, 믿으면서도 확인하고 싶은 그 마음이, 두 인물을 한 문장 안에 담았어요.

몇십 년을 숨긴 비밀, 어째서 그렇게 쉽게 풀렸을까요?


그리고 마침내, 몇십 년을 숨겨 온 유카와의 비밀이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실제로 우스웠다. 물론 유카와의 추리를 비웃은 건 아니었다. 몇십 년을 숨겨 온 비밀인데 총명한 인물이 덤벼들면 이토록 간단히 풀 수 있다니. 소중하게 지켜 온 긴 세월이 어리석게 느껴진 것이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야기가 이토록 담담하게 풀려나가는 모습이, 오히려 충격적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을 지켜 온 이야기가 이토록 가볍게 문을 여는 순간을 읽으면서, 저도 그 허탈함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시리즈를 오래 읽어온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질 거예요. 수많은 사건을 차갑게 풀어내던 천재가, 이번에는 자신의 과거 앞에서 가장 서투른 사람이 되어 있으니까요. 천재 물리학자의 긴 사춘기였다는 옮긴이의 표현이, 그제야 실감 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 온 것은 어쩌면, 한 사람의 아주 오랜 시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첫 시리즈 작품들을 다시 떠올려 봤어요. 그때의 유카와는 이제 이해가 되는데, 이해한 순간 오히려 더 아득해지는 이 묘한 감정은 무엇일까요.

마치며: 투명한 나선이 던진 질문, 당신은 무엇이라 답할 건가요?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이번 작품은 갈릴레오 시리즈를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다는 겁니다. 구사나기와 유카와가 쌓아온 수십 년의 관계가 주는 무게는, 전작들을 읽은 독자라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사건의 서사 자체는 충분히 독립적이라서, 이번 작품으로 시리즈에 입문해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두 종류의 독자에게 모두 권할 수 있다고 느꼈어요. 시리즈 팬에게는 유카와의 과거가, 새로 온 독자에게는 하나의 완성된 미스터리가 선물이니까요.

그래도 이 책이 가장 잘하는 것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책 전체의 분위기를 뒤바꾸는 일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지금 하는 일은 속죄야.


속죄라는 말을 입에 올린 유카와의 얼굴이, 그동안 시리즈에서 보아온 어떤 모습과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유카와 마나부라는 인간을 마침내 발견하게 해주는 작품이었어요. 미스터리와 사람의 관계가 얽힌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에는 시리즈의 과거 사건들에 대한 복선이 조금씩 회수되는 재미도 있어서, 시리즈를 읽어온 독자라면 한 겹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2026년 7월 23일,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된 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까지 갈릴레오 시리즈에 새로운 페이지를 남긴 작가에게, 이 한 권을 다시 펼치며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고인의 대표작들을 떠올리면, 한 작가가 수십 년간 한 장르를 이끌어온 힘이 새삼 실감 납니다. 유카와의 비밀이 벗겨진 자리에,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투명한 나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 그 끝에서 남은 질문은 바로 당신의 몫입니다.

8 / 10점 ★★★★★★★★☆☆
수많은 사건을 풀어낸 천재가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이 책은 '비밀'이 아니라 '사람'을 발견하게 해준다

+ Recent posts